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성 페미니스트(도서) (문단 편집) === 성 소수자로서의 위치? === 본서는 [[성소수자]] 문제를 특히 FTM [[트랜스남성]]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으며, --더럽게 안 읽히는-- 6장, 그리고 역서 최후반부를 차지하는 13장이 그것이다. 가뜩이나 트랜스남성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트랜스남성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은 평범한 남페미로 살아가는 것과는 또 다른 여러 어려움들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본서의 두 챕터의 저자들 역시 트랜스젠더로서의 호소와 남페미로서의 호소가 서로 섞여 있는 글쓰기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우선적으로, FTM 트랜스남성으로서 과연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6장의 저자 Hale(1998)은 미국여성철학회를 돌아다니며 자문을 구했다. 태평양 지부에 있던 샌드라 하딩은 적극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불행히도 모두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은 저자를 애초부터 남성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저자를 남성으로 인정하면서 그와 동시에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부정했다고(…). 이 골치 아픈 문제는 남페미 문제와 트랜스젠더 문제라는 페미니즘의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건드리는 것이지만, 6장에서 저자는 그나마 그 논쟁 속에서조차 늘 쑥덕이는 것은 [[시스젠더]]끼리였으며, 트랜스젠더의 발화 권력은 늘 한계를 겪었다고 토로한다. 재니스 레이먼드(J.G.Raymond)와 같은 혐오자들 사이에서 그나마 홀로 장판파(…)를 하며 싸웠던 인물이 예술가이자 친트랜스 운동가인 저 유명한 샌디 스톤(S.Stone)이었다고. 여기서 Hale(1998)은 [[젠더퀴어]]가 우리 사회의 친숙하고 편안한 관념들을 위협하는 존재로서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지 설명하기 위해 마리아 르곤(M.Legones)이 주창한 '''세계 여행'''(world-traveling)의 개념을 소개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범주들과 용어들, 담론들이 다양한 '세계' 들을 만들어내고, 이들 세계들은 의외로 불완전하고 망상적이다. 젠더퀴어들은 이들 여러 세계들 사이를 여행하고, 어떤 세계로부터 쫓겨나고, 여러 세계에 동시에 거주하기도 하고, 각각의 세계 속에서 서로 다른 존재로서 살아간다. 문제는 트랜스남성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인 입장에서 다양한 세계들 사이를 '여행' 하는 경우인데, 이들은 페미니즘의 세계에서 배우고 갖게 된 것들을 트랜스젠더들의 세계에 가지고 가야 한다는 골치 아픈 문제를 낳는다. 그래서 이들은 어느 쪽에 정체화(동일시)를 해야 할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지만, Hale(1998)은 기존의 세계 중 하나에 정체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히려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 즉 '''새로운 담론과 새로운 존재의 방식을 출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많은 경우 현대사회는 새로운 뭔가가 나타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므로, 이를 위해서는 결국 '''소수자들 사이의 연대'''가 필요하며, FTM이자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은 이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본다. 트랜스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13장의 저자 Rubin(1998)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한때 여성이었던 사람들', '남성으로 분장한 여성들', '남성의 이득을 누리는 여성들' 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트랜스남성들의 삶의 경험은, 그들이 '''처음부터 남성'''이었으며, 단 한 순간도 '''여성의 마음을 갖고 살았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 혐오자들은 마치 FTM들이 남성의 이득을 실컷 누리면서 투쟁은 뒷전으로 미루었던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MTF들에 비해 '''비가시성'''이 더욱 크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기에" 유독 오해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를 뒤로 하고, 저자는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식별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로의 정체화에 중요치 않으며, 단지 페미니즘의 정신을 실천(doing)한다면 그것이 바로 페미니스트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Rubin(1998)은 트랜스남성이자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그는 '''트랜스젠더들은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시스젠더 여성들과 트랜스남성들이 밤 거리를 걷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시스젠더 여성들이 우선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폭행이나 [[강간]]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남성들은 자신이 실제로는 여성의 몸을 갖고 있(었)으나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발각될 것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두려워한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치안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경험의 차이가 있기에, 여성으로서의 삶의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TERF]] 성향을 드러내는 이유가 (어느 정도는) 설명될 수도 있겠다.] 이처럼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의 몸과의 긴장관계 내지는 갈등관계가 존재하는데, 이 때문에 앨리스 자딘(A.Jardine)이 제안했던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기"(Talk Your Body)에 있어서만큼은 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나설 수 있고, 이를 통해 '[[진짜 사나이]]가 되라' 고 압박하는 '''문화적 기대를 뒤흔들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샌드라 하딩이 제안했던 개념, '''삐딱한 정체성'''(perverse identity)으로도 요약될 수 있다. 트랜스남성이자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은 삐딱한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가부장적인 주류 문화의 기대를 의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페미니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